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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찬국 (작가, 기획자, 교육자)
일시 : 2023.12.23
장소 : 불광동의 한 카페
기획자이자 작가, 교육자이기도 한 박찬국은 여주의 밀머리 미술학교, 논아트 밭아트, 동대문옥상낙원DRP, 수원공공예술프로젝트 2022-2023 등과 같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의 장소들을 태동시켜 왔다. 장소를 거점으로 한 그의 활동은 문화기획, 창작 활동, 생산 시스템, 지역 문화, 교육, 도시 생태 및 건강한 먹거리에 걸쳐 다른 세계를 꿈꾸는 동력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연대의 영토를 넓혀 왔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생존하기 어려운 도시적 삶의 조건에 맞서온 그 의 활동은 지속적인 실천의 방식과 평행하게 한국 사회에서 제약이 많은 게릴라 개입으로도 추구되어 왔다. 최근에는 도시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빈집을 찾아가는 ‘영토해킹’을 전술 삼아, 삶의 주변부 에서 소외된 영토에 생기를 불어넣는 행보를 이어간다. 박찬국과의 인터뷰는 한국사회에서 사막화의 실체를 도시자본의 관계로부터 점검하면서, 사막화에 대항하는 저항적 예술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심화해보았다.

1. 이 연구는 도시공간, 생태위기, 문화경험, 디지털의 영역에서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은유를 “사막”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대한 작가님은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시는 지요?
A. 거대한 사막은 아니지만 사막화를 생각하면, 새만금과 같이 일종의 사막화가 인위적으로 버린 장소가 있겠죠. 인공적이지만 방치까지 된 상태요. 실제 사막이 될 정도로 큰 땅은 아니지만 이 전시가 접근하고 있는 인공적 과정을 생각하면, 망했을 때 잘못되거나 비전을 잃어버렸을 때 사막화되는 가능성이 크잖아요. 대부분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나 제국주의하고 관련이 크다 할 수 있죠. 식민화된 조건은 원래 장소가 가진 관계망을 끊어 내고자 해요. 도시는 그래도 사이사이 빈 공간이 있어서 다른 생명체가 깃들 여지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의도된 장소에는 깃들 수가 없죠. 그러니까 관계가 굉장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일종의 포디즘의 대량 생산 체계가 진화해 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이 된 것이라 보고 있어요.

2. 빈 장소가 가진 생동력과 잠재력을 다양한 가능성으로 접근해온 선생님의 프로젝트를 보면, 사막화 에 대한 접근도 이중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사막화’되는 장소가 많다고 봐요. 그게 완전히 빈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차 있지 않고 잠시 비어 있는 상태에요. 그런데 더 큰 개념에서 시간이나 공간을 더 큰 개념에서 보자면 그러지 않은 공간이 없는 거죠. 우주의 상태를 보면 사물화 되지 않는다 할 때는 사건으로 찬, 항상 시간과 공간이 멈춰져 있지 않는 일종의 비어 있는 진공 같은 거예요. 비어 있지만 입자, 그리고 빛의 입자가 계속 움직이고 있고 거기에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실제로 도시에서의 공간도 그렇다고 보거든요. 완전히 비어 있는 건 아니고 에너지가 작동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그 에너지를 어떻게 포착할 것이냐 의 문제가 있다 봐요.
3. 앞서 말씀주신 한국의 도시공간과 관련한 사막화의 흔적을 찾아본다면, 구체적으로 참조해 볼 만한 장소가 있을지요?
A. DRP(동대문옥상낙원)가 위치한 동대문을 예로 들어 볼게요. 땅이 전면적으로 사막화되어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사회에서 장소가 사막화되는 접근방식을 살펴볼 수 있어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가능해요. 하나는 극단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사막화로 삭막하다고 하는 것, 도시의 관계가 붕괴되면서 극단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죠. 동대문과 같이 장사를 하는 장소에서는 서로 이해관계가 있고 관계가 있다면 매우 친절해요. 그런데 그게 아닌 순간 극단적으로 차가워지거나 거리를 두죠. 왜냐하면 관계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 교환만 있는 거지 관계가 발생하지 않죠. 거기다 이 상권은 도시 내에서 공간의 효율까지 극대화해야 해요. 3평짜리 가게의 임대료가 엄청 비싸기에 효율성을 최대한 극대화해서 해야해요. 그렇기에 다르게 보면 옥상 같은 데는 상인들의 관심사가 아닌 거죠. 왜냐하면 거기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뭐가 일어나든 관심사가 아닌거죠. 그런데 이 장소는 쓰레기나 던진다거나 해서, 다른 방식으로 삭막해지는 사막화가 되는 거어요. 우리 사회에는 ‘비어 있는 사막화’도 있지만, 이렇게 ‘꽉 차 있는 사막화’도 있어요. 한국 같은 나라는 빈 공간이 많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 치열하게 확보해야 하잖아요. 사막화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에는 ‘관계의 사막화’와 같은 것이 있고, 실제로 그거는 굉장히 어떤 막막한 사막과 같은 느낌인 거죠.

4. 물리적인 장소의 사막화를 현상으로 보고, 그 배후의 본질적인 문제를 ‘관계’의 단절, 소외와 같은 사막화로부터 파악하신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를 개조하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여러 정책적 시도, 문화활동이 다양한 방면에 걸쳐서 이뤄지고 있어, 대안생태적 관점에서 선생님도 공공예술프로젝트 등 여러 활동으로 관여하고 계십니다. 예술가들의 활동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측면이 있을지요?
A. 일종의 사막화 과정 사이에서도 그게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이클이 있어요. 장소가 망하거나 흥하는 과정을 보면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착취하려고 하니까, 그사이의 관계 또한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효율이 떨어지는 순간 그 장소는 자동적으로 비어버리는 것을 생각해 봐요. 각 도시들이 이런 상황을 재생해 보려고 하지만 사실은 재생이라는 거가 사람, 비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있을 때 가능한데 일시적인 재생처럼 보여지는 활동을 한다고 재생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러면 또다시 공동화되고 말고요. 재생 자체도 사실은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한 방식이기에, 모든 관계를 복원한 이런 방식의 재생이 안 되는 거죠.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재생 자체는 불가능에 가까워요. 권력이나 제도의 헤게모니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맞서 뭔가를 한다는 것도 권력화될 수 있어요. 그래서 아티스트들이 뭔가를 관여하면 이런 사막과 같은 관계 안에서 어 다른 유형의 섬을 만들거나 다른 유형의 공간을 창출한다는 것이에요.
아티스트들이 완전한 답을 주지 않더라도 인사이트나 영향력을 줄 수는 있죠. 녹색 평론에 소개된 마리아 미즈의 글을 보면, ‘자급 경제’가 아니라 ‘자급의 관점’이라는 말을 쓰더라고요. 소농이나 가사 노동에서는 교환 불가능한 방식의 생존을 위한 행위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교환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단순히 경제적 관점 만이 아니라 이제는 문화, 교육, 사회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력을 만들어내는 관점으로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에요. 제가 지금 수원에서 하는 것이 이 관점과 동일해요.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피난처를 재정의하는 방식이죠.

5. 예술적 실천으로부터 인간의 착취에 의한 사막화의 반대편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역량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본의 반대편에서 폐허/공터/나대지의 가능성이 갖는 역상상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역상상이 갖는 저항성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요?
A. 일종의 통치 방식으로서 비워진 공간에서, 그런데 합리적이지 않기에 이 흔들리고 있는 개념을 예술가가 들어와 더 흔들고 개입하여 장소를 소유의 관점이 아닌, 자급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조직하는 거예요. 예술가가 관점이나 관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런 것들이 깃들 수 있는 장소나 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방식을 상상하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험 안에서 구성될 수 있는 여지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경험이 깃들 수 있는 장소나 공간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수원 탑동시민농장에 있는 수원공공예술프로젝트의 아지트 생활에서는 작가들의 작품도 있지만 이와 더불어 버섯을 기른다거나 텃밭을 한다거나 수세미를 기른다는 등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에요. 수세미를 우리가 먹어본다고 생각지도 않잖아요. 수세미를 모른다는 것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어떤 맛에 대한 레시피가 있다는 건 효율화된 방식으로 먹어보는 것일 뿐이죠. 영양, 환경 등등의 조건 때문에 그것과 만나는 방식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이제 우리가 그걸 무너뜨리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행위는 예술가가 아니면 하기가 이제 하기 어려운 행위인 거죠.
6. 빈 땅을 도시자본으로만 파악하는 소유관념에 도전하는 작업과 생태적 실천을 이어어고 계십니다. 심지어, “망했다는 것은 좋다는 것이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했지요. 자본주의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일텐데요. 작가님에게 있어 “망함/실패/비어있음”이 갖는 가능성 또는 저항성은 무엇인가요?
A. 하나의 예를 들어 볼게요. 제가 2011년 남양주에서 ‘논아트 밭아트(nonArt butArt)’ 할 때입니다. 도시개발공사와 같은 곳에서 땅을 사 다져놓고는 공사 전에 분양을 받죠. 몇 년간 비어진 그 땅에 몇 할머니들이 농사를 짖고 싶어지신 거예요. 이 땅은 풀이나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려고, 자갈을 잔뜩 넣어 다진 곳이거든요. 그런데 이 할머니들이 호미 하나만을 들고 가서 땅을 파는 거예요. 할머니들이 어릴 때 척박한 곳에서 땅이 없으니까 뭐라도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죠. 어떤 상황이 벌어지냐면, 돌을 마치 발굴처럼 골라내요. 이 돌을 옆으로 골라내서 양쪽 사이즈에 계속 쌓아서 제주도 돌담처럼 되는 거예요. 휠체어에 있는 할머니, 농사짖는 할머니, 딸과 손녀. 그 할머니들이 땅을 파서 이렇게 하는 거를 내가 옆에서 보고 그거를 이제 우리가 컵하고 그냥 화분 그걸 가지고 갔죠. 그 땅을 파려면 깊이 다져놓은 땅이라 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종이컵 같은 걸 가져다 밑을 자르고 나서 거기다 흙을 담아 바질 등을 심어요. 식물의 뿌리가 내려가서 돌들 사이를 타고 스스로 내려가게 하는 방식으로 심겠다는 건데 다 잘 자랐는지 아닌지는 몰라요. 그런데 어쨌든 할머니는 우리가 꽃을 심어준다고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할머니들과 같이 하면서, 봄에 놀았거든요. 그건 뭐 프로젝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할머니들 만나서 너무 흥미로운 거죠. 그런데 그분들에게 이건 어떤 삶의 방식인 거예요. 그때 찍은 사진이 한 장 있고 글도 하나 있어요. 사진을 보면 옆에 쌓인 돌들이 있는데 그게 땅의 깊이로 보여지죠. 이런 경험은 여성들의 가사 노동이라는 맥락에서 가능했던 거예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익이나 효용을 위해서는 그런 밭을 만들 수가 없죠. 우리의 방식으로는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강한 노동을 수반하는 데다가, 내년에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을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할머니들에게는 그냥 삶의 방식이에요. 그게 얼마나 마트보다 저렴하냐는 관점이 아닌 거죠. 그런 관점과 경험을 어떻게 환기하느냐가 제 프로젝트의 목적인 셈이지요.
*작가 웹사이트
*참고 글&사진 : 맹목을 재치있게 우회하기 (박찬국, 2011 논아트 밭아트 원고)
https://www.chankook.com/nonart-butart
*참고 동영상
2022 전라도바닷가루트lost—post 해남 (2022 전남문화재단 사가지 프로젝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