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자본주의의 전장으로서 사막 (인터뷰: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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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상민 (연구자)

인터뷰 일시 : 2023년 12월 26일

김상민은 기술, 미디어, 예술의 접점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비)인간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연구자다. 일상의 디지털화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이 지배하는 경험의 세계를 일상공간, 대중문화 및 문화예술의 안팎에서 점검해 왔다. 시각/영상문화,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으며,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한국문화연구학회와 캣츠랩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디지털 자기기록의 문화와 기술』(2016), 『큐레이팅 팬데믹』(2021, 공저), 『서드 라이프』(2020, 공저) 등이 있다. 본 인터뷰에서 연구자는 자본주의의 추출주의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바탕으로 디지털문화와 가속화된 사막화에 대한 문화적 독해를 시도한다.

1. 이 전시의 사전 연구는 도시공간, 생태위기, 문화경험, 디지털의 영역에서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은유를 “사막”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시는지요?

A. 사막은 아직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곳이라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낭만화된 이미지로 상상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해가 내리쬐지만 밤이 되면 서늘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과 사구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경관이 그려집니다. 아마도 해외 여행을 보여주는 요즘의 많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사막의 풍경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또 떠오르는 사막의 이미지는 어릴 때 읽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그려지곤 했던, 사람 없이 멀리 떨어진 미지의 공간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생텍쥐페리 자신이 불시착하여 경험하기도 했을 사하라 사막에서의 고독하지만 차분한 날들을 어린 시절 꽤 동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획하고 계신 전시는 우리의 황폐화되는 현실을 사막으로 비유하는 것으로 접근하고 계시지만, 저에게 사막은 이렇게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놀랍습니다. 사막에 실제 거주하게 되진 않겠지만 늘 (여행이나 전쟁과 같은 어떤 이유로) 불시의 거주지로 삼게 되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결국 영화와 같은 시각문화의 영향이겠지요. 이는 결국 사막에 대해 이국화하는(exoticize) 경향, 즉 그것에 대해 환상을 품고 낭만화하는 한편, 그것을 착취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막의 환경은 실제 친밀해지지는 않겠지만 늘 환상(신기루?)을 자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식민지’는 아닐까요.

2. 선생님은 마스크라는 사물, 자연과 인공물이 하이브리드된 돌 이미지를 떠올리는 등 동시대 ‘오브제’에 투영된 시각문화의 면면들을 밝혀오셨습니다. 본 리서치가 관심갖고 있는 도시공간 혹은 디지털공간에서의 사막화의 흔적 또는 징후를 어떠한 오브제로부터 떠올려볼 수 있을지요?

A. 우리 도시공간은 사실 이미 사막화된지 오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때 사막화된다는 표현은 주로 건물이 지어질 때 쓰이는 재료와 관련해서 든 생각입니다. 특히 서울같이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사방에 있는 도시에서는 그 자체가 이미 사막화의 결과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멘트와 모래, 자갈, 물이 섞여 만들어지는 콘크리트로 도시공간에 쌓아 올린 높은 빌딩들은 자연 어딘가로부터 그 높이와 부피만큼의 시멘트와 모래를 채굴해왔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거대한 콘크리트가 적층된 사막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참 아파트 열풍이 불던 과거 어느 시기에는 바닷가에서 퍼온 모래로 만든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가 모래의 염분때문에 철골이 빨리 부식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브제라기엔 너무 크기나 단위가 거대하기는 하지만 도시공간의 아파트나 건물들을 사막화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오브제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끔 비행기로 서울과 수도권 (아니 한국 전역) 상공을 지날 때 아래를 내려다 보면 빈틈없이 꽉 들어찬 거대한 아파트 오브제들은 정말 기괴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디지털공간에서의 사막화를 보여주는 오브제는 당연하게도 지금의 디지털 네트워크의 문화를 가능하게 만든 기반이 되는 사물인 반도체와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반도체 자체를 직접 보거나 만질 일은 별로 없습니다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부터 미사일이나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어디에도 반도체가 사용되지 않는 전자장치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반도체에 둘러싸여 있죠. 그런데 반도체는 아시다시피 실리콘, 즉 모래의 주요 구성성분인 규소로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도시공간만큼이나 디지털공간도 모래로부터 왔고 모래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도시건 디지털 문화건, 우리 문명이 모래에 기반하고 있고 또 모래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살짝 무섭기조차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막화가 이미 충분히 진행되어 왔지만 앞으로 또 얼마나 멀리 진행될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3. 디지털자본주의와 사막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모하비 사막은 엄청난 규모의 위성과 로켓 플랫폼, 최첨단 살인병기로서 전투기 생산시설 등등 인류의 멈추지 않는 정복지적 욕망이 디지털자본주의과 결탁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한편, 이 모하비 사막은 애플의 OS 버전의 이름으로 바탕화면 이미지를 통해 전세계인의 무의식에 디지털자본의 환영으로 심어져 왔습니다. 전시에서는 향후에 이를 ‘OS 사막’이라는 파트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를 접근하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사례 혹은 견해가 있으신지요?

A. 디지털자본주의는 사실상 우리 사회의 보편적 사막화가 구성되는 주요한 방식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 내의 사막 지역은 애초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강탈과 통제의 역사가 파묻힌 곳이면서, 지난 시절 핵무기 실험장소이기도 했고 각종 모의 전쟁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도사리는 장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마도 사막은 많은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막은 또한 ‘이미 황폐한 자연’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되어 이곳에서 어떤 식으로 자연을 채굴하거나 파괴해도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들이 만연하지 않나 싶습니다.

케이트 크러퍼드의 <AI 지도책>을 보면 시작부터 저자가 사막지역으로 가는 여정을 서술합니다. 크러퍼드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벨리를 지나 동쪽으로 가면서 네바다의 클레이턴 벨리 사막지역 근처 실버 피크에 도착하는데, 그곳은 몇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초록색 연못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 연못을 증발시켜 리튬을 채굴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채굴된 리튬과 같은 광물들은 이제 우리의 디지털 문화의 꽃인 AI뿐만 아니라 각종 연산 및 이동 장치들의 배터리 제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되었지요. 그런데 구글지도의 인공위성 사진을 겹쳐 보면 그 거대한 연못들은 묘한 색을 반사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만, 광물의 채굴과 건조의 과정에서 엄청난 오염이 토양에 발생한다는 사실은 대체로 무시되곤 합니다. 앞서 도시와 모래, 디지털공간과 모래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과 유사하게, 사막은 디지털자본주의의 물질적 기반이 되는 광물들을 채굴하고 생산하는 장소이고 그 결과로 더욱 황폐해지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주목해봐야할 듯합니다. 아마도 미국 외에도 저개발국가의 사막 지역은 더욱 강도깊은 채굴과 오염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앞선 모하비 사막의 예처럼, 디지털세계에서 사막은 빈번하게 새로운 프론티어이자 실험과 생성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물질적/비물질적 터로서 이용되어 오고 있습니다. 워크숍에서 소개주신 원고 <채굴되는 지구, 추출되는 데이터>에서, “디지털화로 갈수록 지구라는 몸체와 채굴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선생님의 견해가 본 전시의 방향과 관련해 특히나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사막이라는 장소를 독해본다면, 어떠한 접근 경로가 가능할지요?

A. 사막은 지도를 작성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다는 점에서 무한히 조형적(plastic)인 장소입니다. 원래 질서가 없는 듯 보이기에 거기에서 어떤 일을 벌여도 늘 그대로일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앞서 사막이라는 자연을 근대인들이 얼마나 마음껏 파헤치고 변형시켜왔는지를 이야기했지만, 그곳은 결국 마치 원래 그랬듯 (우리가 보기에) 무질서함을 계속 유지할 뿐이겠죠. 다만 (사실 근대인들이 파괴해 온 자연환경 때문에) 사막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이제 우리의 안전한 서식지에 아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가 싶습니다. 그것이 사막화의 본질이겠죠. 우리가 디지털 사막의 영역을 확대하면 할수록 현실의 사막은 우리를 향해 더 확대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디지털자본주의가 팽창할수록 비물질적인 가상의 사이버스페이스(네트워크)가 광대하게 넓어진다고 상상하곤 하지만, 실상 그것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는 장치들이나 네트워크 자체를 구성하는 질료와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이 디지털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자원을 채굴하고, 더 많은 장치를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하는 것이 논리적인 귀결일 것입니다. 생산이나 소비의 효율이 점점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만큼 생산과 소비가 확대되고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더 많은 물질을 자연으로부터 채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광물 채굴과 디지털자본주의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인 기욤 피트롱이 <프로메테우스의 금속>과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그 실체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5. 본 전시준비연구와 관련해 참조할 만한 영화, 글, 이미지 등 떠오르는 자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사막과 관련해서는 주로 <카사블랑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어릴 적 본 옛날 영화에서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사막 자체의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막 지역에서의 삶과 사랑이 그려지기도 했지요. 비교적 최근에 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도 꽤 인상적으로 사막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 사막을 낭만적으로 상상하곤 했다고 하지만, 이 영화로 사막을 떠올리자면 그야말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현실을 끔찍하게 그려내어서 사막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듄>같은 소설/영화의 SF적 상상력도 사막에 대해 아주 막막한 느낌을 가지게 만듭니다. 분명 까마득한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까마득한 과거인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사막에 관련된 텍스트로는 어쩐지 전쟁과 관련된 책이 떠오릅니다. 사막과 전쟁은 정말 불가분의 이미지로 서로 맞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읽은 폴 비릴리오의 <Desert Screen>이라는 책인데 90년대 걸프전이 어째서 과거의 전쟁들과 달리 역사상 처음으로 정보가 중요한 전쟁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던 듯합니다. 그가 그 전쟁에서 사막을 어떻게 그려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걸프전은 책의 제목처럼 사막을 순항미사일이나 인공위성이 바라보는 전쟁의 시각적 스크린으로써 새롭게 규정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막은 정말 드러나지 않는 전장(theater of war)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