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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범철 (연구자)
인터뷰 일시 : 2023년 12월 27일
도시 공통장 및 커먼즈 연구를 해온 권범철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구를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고도로 자본화된 도시에서 예술의 가치가 생산, 소비, 변용, 축소되어 가는 일련의 전개 과정을 ‘공통재’의 구성과 해체를 바탕으로 하여 연구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통장, 돌봄, 생태, 예술을 함께 엮어서 사고하며 활동하는 데 관심이 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생태적지혜연구소 협동조합 부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예술과 공통장』(2024), 공동 저서로 『돌봄의 시간들』(2023), 『지식을 공유하라』(2022), 『서울의 공간경제학』(2018)이 있다. 본 인터뷰에서는 연구자가 최근에 원고로 다뤄온 주제로서 <저항하는 자연>과 <도시를 시골화하기>를 바탕에 두고, 도시생태계와 사막화 현상의 그림자와 배후의 작동방식에 접근한다.
1. 이 전시사전연구는 도시공간, 생태위기, 문화경험, 디지털의 영역에서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은유를 “사막”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막에 대해 선생님은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시는지요?
A. 저는 사막이라는 말을 은유로 들었을 때 백화현상이라는 말을 떠올렸는데요. 2010년대 중후반 즈음 서울 몇몇 상점가를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크게 이슈로 떠올랐을 때, 마포 지역에서 이와 관련하여 활동하시던 어느 분께서 도시의 다종다양한 삶들이 소멸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은유로 백화현상이라는 말을 차용하여 사용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잘 아시는대로 백화현상은 바다 수온이 변화하며 해조류가 사라지는 것으로, 바다 사막화로 불리기도 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막화는 물론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일어납니다. 이때의 사막화란 생명이 소멸해가는, 즉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니 당연하게도 (사막이 아니라) 사막화라는 말에서는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막화가 아니라 사막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뒤따라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어떤 매혹적인 느낌도 줍니다. 보드리야르는 사막은 유혹이 아니라 절대적 매혹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인간의 문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로 인해 어떤 매혹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의 사막화가 매혹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 어쨌든 사막은 인간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어떤 이끌림을 작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도시공간에서 사막화는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장소의 공동화, 게토화, 폐허화와 더불어, 문명의 산업화/도시화가 초래한 기후위기의 결과물로서 도시적 삶의 위기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기고하신 <도시를 시골화하기>를 읽으며, 도시 사막화에 대항하는 정치/경제/생태/문화적 실천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스쾃, 도시 텃밭의 가능성에 주목하셨고, 직접 수원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는 연구자/변호사/예술가와 협업하여 ‘생태법안’ 발의 등 지속적으로 예술의 현실참여에도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한 예술 실천에서 보고 계시는 가능성은 무엇인지요?
A. 네그리는 예술을 특이성의 생산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이를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해 보면,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노동을 강제하는 체계이므로 이 체계에서 특이성이란 노동에서 벗어난 삶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예술 실천은 (좁은 의미에서의) 노동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재생산할 수 있는 다른 토대가 필요하고 이러한 점에서 스쾃, 도시 텃밭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이러한 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활동이 우리를 재생산하는 다른 방식을 만들어갈 뿐 아니라 집합적 주체로서의 ‘우리’를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구성이, 주체성의 위기로 이해할 수 있는 오늘날의 위기 상황에서 그 자체로 중요한 가능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 도시에서 사막화는 장소의 분리/구별/구획로부터 발생할 텐데요. 이와 관련해 워크숍에서 얘기주신, 비물질 노동과 사회적 공간에 대한 접근이 사막화라는 장소를 파악하는 데 있어 여러 시사점을 남겨보입니다. 비물질 노동의 배후에서 노동자들의 파편화 및 물질적 신체의 유령화가 야기한 사회적 관계 및 공통장의 위기에 대한 견해였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더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A. 산업 생산의 공장이 착취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결사의 공간이었다면, 오늘날 비물질 노동은 전자의 강화와 후자의 약화라는 특징을 지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비물질 노동이 지식, 정보, 소통, 정동 등을 중심으로 수행되며, 그에 따라 그 노동 과정 자체가 자율적 협력의 계기로 작동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 이러한 주장은 노동 과정 내부에서 자율의 조건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긴 합니다 —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질과 연계되지 않은 협력은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임금노동 일자리에 기초한 협력의 한계를 보여주며, 따라서 임금노동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계급구성(class composition)을 바깥으로 확장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주장대로 자급적 관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급적 역량을 기르는 건 우선 임금이 아닌 다른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계급적 힘을 키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임금이 아닌 다른 기댈 것이 있을 때 사장에 대응하고 국가에 흡수되지 않을 힘이 커진다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우리가 계속 운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자급적 관점은 특히 생태 위기 속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급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대 도시에서의 자급은 과거와 같은 형태일 수 없고, 따라서 새로운 자급 방식에 대한 실험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져야할 텐데요. 그러한 실험들을 여러 예술실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4. 석유 등 자원의 채굴 장소이자, 네옴과 같은 기술유토피아의 장소로서 사막, 그리고 또 다른 행성을 식민화하기 위한 우주산업의 실험지가 사막이라는 것은 위 원고에서 언급주신 ‘저렴한 자연’(제이슨 W. 무어)으로서 사막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막이 오늘날 적극적으로 채굴/개발의 장소로서 도구화되어가는 것과 관련해, 자본주의와 사막의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 사막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가 자연과 도시를 그리고 기타 영역을 사막화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점점 자신의 토대를 상실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제이슨 무어가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을 이야기하는 이유일 텐데요.
그런데 사막화가 아니라 현실의 사막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혹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매혹이 보드리야르가 이야기하듯 문명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그리고 이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문명의 불가능성이 사막의 매혹의 원천이라면, 이때 사막은 기술유토피아주의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생명의 존재가 불가능해보이는 그곳이,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기술을 전시할 너무나 적합한 무대로 여겨지는 거죠. 이것이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사례는 과거 사막이 핵폭탄 실험의 장소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때는 사막 위의 도시라든가, 외계의 사막(=생명체가 없는 행성)을 위한 전초기지 같은 곳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명의 불가능성으로 이해되는 사막이 바로 기술주의자들에게는 인간이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5. 본 전시준비연구와 관련해 참조할 만한 영화, 글, 이미지 등 떠오르는 자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위에서 언급한 보드리야르의 사막 이야기는 <아메리카>라는 책에 등장합니다. 네그리의 예술과 특이성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과 다중>에 있구요. 그외에 자급에 대한 논의로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이 쓴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가 쓴 <에코페미니즘>이 우선 생각나는데요. 이후에 생각나는 대로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권범철 원고 ‘도시는 생동하는가’ (생태적 지혜 웹사이트)


